상주문화원장 김철수 박사 >
화령장 전투를 상기(想起)합시다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19/07/01 [10:23]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상주문화원장   김철수 박사

올해는 ‘6·25 동란’이 일어난 지 69년째 되는 날입니다.  ‘6·25 동란’은 북한군의 기습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이지만, 아직도 어정쩡한 정전(停戰)상태로 남아있어 안타깝습니다.  


  그  ‘6·25 동란’ 때 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시기에 나라의 교두보(橋頭堡)를 마련했던 전투가 ‘화령장 전투’입니다. 4일 동안 두 차례의 전투에서 아군의 대대병력이 북한군 2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큰 전과(戰果)를 올린 전투였습니다.

 

  ‘화령장 전투’를 보면, 한국은 억세게 운(運)이 좋았고, 북한은 억세게 운(運)이 없었습니다. 당시 괴산~화령지대에는 방어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군 제15사단의 제49연대가 7월 17일 오후에 상주로 진격하기 위해 화령을 통과를 시도했는데, 이날 새벽에 ‘문경에서 고전하는 국군 제6사단을 지원하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으로 국군 제17연대 제1대대가 화령을 지나가는 참이었습니다.


  이때 제17연대 제1대대가 함창으로 이동하기 위해 화령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북한군 제49연대와 뒤따르던 제45연대 병력이 아무런 저항없이 상주로 진격해서 김천, 대구를 거쳐 신속하게 부산까지 점령했을 것입니다. 


  나라가 다 넘어가는 이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간에 이렇게 타이밍을 맞춘 일은 신(神)의 가호(加護)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화령장전투’의 승전(勝戰)할 수 있었던 빌미의 첫째는 ‘엄봉길’이라는 주민의 신고였고, 둘째는 제17연대 제1대대장 이관수 소령의 지혜와 결단이었고, 셋째는 제1대대의 침착한 대응이었습니다.


  제1대대장 이관수 소령은 시골 노인의 제보를 헛되이 듣지 않고 현지를 확인하는 치밀한 과정에서 북한군 연락병을 체포했고 그의 정보를 토대로 상곡리 일대에 미리 진지를 구축하고 매복했다가 무방비상태의 북한군 제49연대를 기습하여, 적군 포로 30명, 사살 250명, 박격포 20문, 45mm대전차포 7문, 소총 1,200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다시 화북 갈령을 넘어오는 북한군 정찰병 2명을 체포하고 북한군 45연대의 이동정보를 수집하여 제17연대 제2대대장 송호림 소령이 지휘하는 제2대대 병력이 동관리~하송리 계곡에서 7월 21일 새벽에 넘어오는 북한군 제45연대를 기습 공격하여 북괴군 사살 356명, 포로 26명, 박격포 16문, 반전차포 2문, 기관총 53정, 소총 185정 등의 전과를 올렸으며, 이 전과로 제17연대는 연대장을 비롯한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상곡리와 동관리전투에 이어서 갈령과 장자동에서 잔당소탕하기 까지 총 9일 동안 북한의 정예 15사단이 남진을 못하였고, 이 시간에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전열을 재 정비할 수 있었으며, 유엔군 또한 이 기간에 속속 부산, 포항으로 상륙하여 ‘대반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상주 ‘화령장전투’는 이렇게 나라를 구한 전투였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상기(想起)해야 할 것입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상주시민신문
 
 
1/31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