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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慶尙監營) 상주시대(尙州時代)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19/08/29 [09:24]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경상감영 상주시대>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 중에서 조선 전기에는 경상감영이 상주에서 185년간 있으면서 197명의 경상도관찰사가 경상도를 다스렸고, 조선 후기의 경상감영은 295년 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253명의 경상도관찰사가 소임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역사서를 보면, 조선전기의 상주 경상감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조선후기의 대구 경상감영에 대해서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500년 경상감영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경상감영 상주시대>와 <경상감영 대구시대>로 나누어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경상감영의 설명에 대한 형형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개국(開國) 후에 있었던 조선의 8도(道) 체제는 태종대에 와서 확립되었으며, 경상감영(慶尙監營)은 조선의 지방 행정의 8도 체제하에서 경상도(慶尙道)를 관할하던 감영(監營)이었습니다.


  그래서 1392년에 개국한 조선(朝鮮)은 경주에 경상도 감영을 두었고, 경주부윤(慶州府尹)이 경상도 관찰사를 겸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407년(태종 7)에 경상도가 다른 도(道)에 비해서 땅이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조정에서는 낙동강(洛東江)을 중심으로 서쪽을 우도(右道), 동쪽을 좌도(左道)로 나누고, 좌도는 종전대로 경주부윤(慶州府尹)이, 우도는 상주목사(尙州牧使)가 각각 관찰사를 겸하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상주에 경상감영이 처음으로 들어선 것이 이때였습니다.


  그러나 경상도(慶尙道)의 우·좌 분도(分道)가 당시의 조세체계(租稅體系)에 혼란을 일으키자, 이듬해인 1408년(태종 8)에 경상도로 다시 환원하고, 경상우도와 경상좌도에 있었던 감영은 한곳에 두어야 하는데, 이때 경상감영을 상주로 정하고 상주목사가 경상도관찰사를 겸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화(王化)의 유행(流行)은 도성으로부터 상주를 거쳐서 남으로 전파되는 것이지, 경주에서 북으로 역행할 수 없다.”는 영의정 황희(黃喜)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519년(중종 14)에, 다시 우 · 좌도(右 左道)로 나누고 상주목사와 경주부윤에게 각각 관찰사를 맡겼다가, 그해 12월에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으며,  이후로도 상황에 따라 경상도는 나누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왜군에 의해 상주의 경상감영이 소실되자, 어쩔 수 없이 이듬해인 1593년 10월에 성주목(星州牧)의 속현(屬縣)이었던 팔거현(八莒縣)으로 경상감영이 옮기게 되었고, 이후에 대구부(大邱府)의 달성(達城)과 안동부(安東府)로 전전하다가 선조 34년(1601년)에 최종적으로 다시 대구(大邱)로 이전되어서, 1896년(고종 33)의 갑오개혁으로 8도 체제가 폐지되고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까지 295년 동안 경상감영은 대구에서 존속하였습니다. 


  187년의 역사를 가진 상주감영은 조선후기의 대구 경상감영에는 없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신·구 경상도관찰사의 사무인계는 상주목의 북쪽 도계(道界)에 있는 교구소(交龜所)에서 행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까지 인부(印符)를 전수(傳受)하는 장소였습니다.


  둘째로, 경상도관찰사의 순력행사는 이 교구정에서 출발하여 상주관아까지 이어졌던 행사였습니다.


  셋째는, 조선 초기부터 조선 말기까지의 경상도관찰사의 명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경상도선생안(慶尙道先生案>이 상주에서 계속 기록되었으며, 그 원본이 유일하게 상주향교에서 보관해 오다가 현재는 상주박물관에 있습니다.     

 

   이제 상주시에서는 상주시 복룡동의 옛 경상북도 잠종장(慶尙北道 蠶種場) 터에 ‘경상감영공원(慶尙監營公園)’을 조성하고 그곳에 옛 경상감영 건물 중에서 상산관(商山館), 진남루(鎭南樓), 작청(作廳), 청유당(聽猶堂), 제금당(製錦堂), 군뢰청(軍牢廳), 태평루(太平樓), 사령청(使令廳), 청정사(淸淨舍), 공고(工庫), 내아(內衙), 익랑(翼廊) 등 건물을 재현해서 지금까지는 실체가 없어서 아쉬웠으나 이제는 자랑스러운 <경상감영의 상주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옛 경상감영이 있었던 곳에 재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이 정도라도 상주의 역사를 읽고, 홍보하고, 자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사라진 문화유산(文化遺産)을 하나하나씩 복원하거나 재현하면 역사도시 상주의 그림이 제대로 될 것 같다는 기쁜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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