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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Victoria) 여왕과 박근혜 전 대통령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17/05/31 [09:39]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영국의 빅토리아(victoria) 여왕과 우리나라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먼저 빅토리아 여왕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빅토리아가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게 하였고, 다른 왕족들과 친분을 쌓는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억압되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아주 고집스런 성격으로 자랐으며, 그 성격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오랫동안 외부와 격리된 청와대에서 지극히 한정된 사람들 틈에서 공주처럼 성장하였고 타고난 성격이 내성적인 연유로 고집스런 성격이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즉위하자, 첫 총리인 멜버른(Melbourne)경과 매일 1시간씩 대면해서 여러 가지 사회, 정치 현안을 논의하여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 각종 현안문제를 참모들과 대면 협의를 하지 않을 정도로 은거(隱居)하였기 때문에 늘 불통(不通)이 이야기되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고집 세고 완고한 성격의 빅토리아 여왕에게는 궁정의 업무를 잘 처리해 주는 남편 알버트(Albert) 공이 있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그런 훌륭한 조력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42살에 타계하자, 빅토리아 여왕은 충격으로 국정에서 손을 뗀 채 윈저 성(Windser Castle)에서 자녀들과 은거하고 국정(國政)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무책임하게 국정을 소홀히 한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여왕의 퇴위를 주장하는 여론이 형성되자, 여왕은 위기감을 느끼고 국정에 복귀해서 1877년 러시아가 투르크를 공격해 <산스테파노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여 <베를린 조약>을 통해 <산스테파노 조약>을 폐기하였으며, 또한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독립시킴으로써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는 영토를 크게 줄여버리는 성과를 통해서 영국의 위신을 바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운 희생을 당했고, 국민들의 불만이 촛불시위로 이어지는데도 처소에서 칩거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슷한 점은 둘 다 고집이 셌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적극 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은 자연사(自然死)함으로서 허물이 모두 덮어져서 더 이상 세인(世人)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彈劾)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났고, 뇌물죄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9대손인 공부(孔駙)가 편찬한공총자(孔叢子)에 있는 말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5장에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정농단의 책임은 무겁지만, 이제는 모든 것 다 망가지고 처절하게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더 이상 돌팔매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며, 매사에 우선해서 관심을 가질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국민화합(國民和合)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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