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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논단] 왜 사람들은 떠나는가?
민 경 삼 문해교육조합 이사장 / 이원의료기 대표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19/09/18 [10:49]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민경삼 문해교육조합 이사장 / 이원의료기 대표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초원이 건기에 접어들면 수만 마리의 누 떼가 시커먼 흙먼지와 지축을 흔드는 발굽소리 속에 케냐 마사이마라 마라강을 넘기까지 새로운 풀을 찾아 죽음을 무릅쓴 1,600km의 대이동은 죽기 전에 꼭 보아야할 장면으로 세계 7대 경관으로 통한다.

 

 누 떼의 대이동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 초원을 찾는 것으로, 인간의 절망적인 가난과 전쟁으로 인한 목숨을 건 이주 역사는 누 떼의 생존을 위한 이동과 의미가 같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결혼, 유학, 일자리 등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선택형 국내외 장단기 이주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찾아 국외 이주를 선택하는 것 등의 이주에 대한 내용 속엔 인간만이 갖는 명암이 혼재되어 있다.

 

 이주는 정착해 있던 삶의 터전을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자신이 누려온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두려움과 역경의 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희망을 찾아 이주를 선택하였고 이로 인해 산업화와 도시화, 정치,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역사의 변화가 일어났다. 결국 사람들은 슬픔과 고난, 두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주를 선택하는 이유는 현재 처해있는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압박보다 새로운 이주지에서 이질적인 불편함을 감내하더라도 그 곳에서는 ‘지금 보다는 낫겠지!’ 하는 새 희망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초록빛 꿈을 위함이다.

 

 인류의 이주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이동하며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며 살았고, 신석기 이후 고대인들은 농경과 목축으로 일정한 지역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착생활 이후에도 인류는 불의의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부족이나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주활동은 계속 되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의 민족이주는 인류의 삶과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경우로 5세기 유럽에서 사악한 악당으로 묘사되는 훈족의 아틸라를 피해 이주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다.

 

 아시아 일대의 대초원지에서 살던 유목기마민족인 훈족은 영토 확장을 위해 서진을 했는데, 스칸디나비아 반도, 라인강 일대, 발트해 연안에 살던 게르만족은 훈족에 쫓겨 유럽각지로 대거 이동해 로마제국의 영토로 밀려들어갔고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 족의 침입으로 476년 멸망하였다.

 

이로 인해 유럽의 로마중심 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200년간 지속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유럽 사회를 고대에서 중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가 있으며, 유럽의 정치,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의 지형 변화를 가져왔다.

 

근대의 큰 이주현상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 성공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농업과 수공업 위주의 산업에서 탈피하여 새롭게 발명된 동력을 이용하여 공업과 기계를 사용하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로 인한 생산의 혁신과 대량생산, 노동력의 증가는 이농현상으로 밀집된 도시의 발전을 가져왔으나, 농촌은 더욱 피폐해지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자본의 창출, 신분제의 변화와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혜택은 새로운 자본가와 전통의 귀족 등의 소수만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과 기근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규모 대륙이주와 미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이주 역사는 구한말 간도, 하와이, 멕시코 등으로의 한이 서린 국외이주와, 6/25 전쟁의 피난으로 인한 지역 간의 이주와 70~80년대의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도시화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가난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 주택난과 교통난, 환경공해 등을 포함한 심각한 사회 외형의 병폐를 발생시켰고, 빈익빈부익부와 결과중심의 치열한 교육열로 인한 병폐 등 사회 내적인 문제점을 유발했다.


 산업화 시대의 한국 현대사는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망은 오직 교육이었다는 명제는 확연하다. 이로 인하여 일찍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게 되는 젊은이의 도시 집중화 현상은 가속되었고 고향에서는 품을 수 없는 떠난 자식이 되었다. 비록 지금의 교육은 성공과 부의 대물림을 위한 수단이라 할지라도 높은 교육열로 인한 부모의 관심은 오직 ‘잘 되어라’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모처럼 시내의 저녁거리에 많은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동안 어디에 갔다가 이제 왔는지?’ 젊은이의 현장을 보면서 잠시의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추석연휴가 지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공허함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인구감소로 인한 위기의 상주’라는 말에 더욱 상처가 온다. 학업으로 떠나는 청춘을 상주는 교육으로도 잡을 수가 없고, 직장으로도 품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니 참 딱하다는 하소연 뿐 이다. 오직 하나의 위안은 희망을 품고 어머니와 같은 상주를 떠나 대한민국 도처에 자리 잡은 상주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연어처럼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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