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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공검지(尙州恭儉池)의 불하(拂下)문제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19/11/29 [11:06]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19321221일자 동아일보에 상주공검지 불하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이 기사를 쓰신 분은 상주에 계시는 김규홍(金奎鴻)씨였습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공검지가 불하되는 과정의 일이 소상하게 기록된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당시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공갈못(恭儉池)은 조선(朝鮮)사대지(四大池)의 일()로 예적 고려(高麗) 명종(明宗)() 사록(司祿) 최정분(崔正汾)이가 수축(修築)한 이래 누백년(累百年)을 내려오며 그 못 저수(貯水)로 인보(引洑)하야 연선(沿線) 수천여(數千餘) 두락(斗落)의 전답(田畓)을 경작(耕作)하야 오는 흉풍(凶豊)을 모르는 보물(寶物)이다.

 

  공갈못을 생각할 때에 이에 따른 상주(尙州) 함창(咸昌)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處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우리 명주(明綢) 네짜다오. - 이러한 동요(童謠)가 연상(聯想)되나니 녯적 공갈못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호대(浩大)하야 주위(周圍)가 십리(十里)나 되고 광활(廣闊)한 그 바탕에 물이 가득한대 헹긔로운 련꽃이 한긋 피어서 구경(求景)하는 사람으로 하야금 심취(心醉)케하며 운집(雲集)하는 수조(水鳥)와 풍부한 어류(魚類)는 인간(人間)의 호기심(好奇心)을 끄으러 어느 때든지 사람이 끈힐 사이가 업섯다.

 

  그러나 연구세심(年舊歲深)함을 딸하서 홍수(洪水)가 질대마다 사토(沙土)가 밀려들어서 수심(水深)이 여터지며 면적(面積)이 좁아져서 현재(現在)는 근()히 일만삼천사백구십오평(一萬三千四百九十五坪)에 불과(不過)하야 저수량(貯水量)도 심()히 감소(減少)하야짐으로 일망무제(一望無際)로 연폭(連幅)하야 잇는 대평(大坪)덜 수천(數千)두락(斗落)의 작인(作人)등은 낙관(樂觀)할 수 업슴으로 그 대책(對策)을 강구(講究)하는 중에 잇고 금춘(今春)에 상주(尙州)기자단(記者團)에서도 동지(同池)를 좀더 유리(有利)하게 이용(利用)할 방도(方道)를 강구(講究)키 위()하야 상주관민유력자다수(尙州官民有力者多數)를 초청(招請)하야 동지(同池)를 실지답사(實地踏査)하고 대개축(大改築)할 사()를 논구(論究)하야 불원(不遠)한 장래(將來)에 그 실현(實現)을 보게 되엇섯다. 어찌 뜻한 바이랴 얼마 전에 당국(當局)으로부터 조선총독부재정결핍보충책(朝鮮總督府財政缺乏補充策)으로 불용관용지(不用官用地)를 불하(拂下)한다는 명목하(名目下)에 공검지(恭儉池)를 최저가격(最低價格) 오천원이상(五千圓)以上)으로 십개년년부상환(十個年年賦償還)으로 경매(競賣)한다는 지()를 발표(發表)하고 방금원매자(方今願買者)를 물색(物色)하는 중()이라고 한다.

 

  공검지(恭儉池) 명의(名義)는 비록 관유지(官有地)이나 오육백년이래관개연선작인등(五六百年爾來灌漑沿線作人等)이 자유(自由)로 관리(管理)하야왓슴으로 기실(其實)은 민유지(民有地)나 다름이업섯다 이제 이못이 불하(拂下)한바되어 어떤 개인(個人)이나 혹()은 재벌(財閥)이 독점(獨占)한바 된다면 물론(勿論)종전(從前)과 가티 자유(自由)로 관개(灌漑)치못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事實)이니 필연(必然)코 작인(作人)등과 분규(紛糾)는 난면(難免)할 것이다.

   

  동지(同池)의 현상(現狀)으로보면 통상시(通常時)저수량(貯水量)은 해지(該池)의 삼분지일(三分之一)에 불과(不過)하고 가장 만흘때는 이분지일(二分之一)에 미만(未滿)하며 한발(旱魃)이 심()하면 지저전부(池底全部)가 노출(露出)하나니 만일(萬一)신지주(新池主)가 차()에 감()하야 원형(原形)을 변경(變更)하야 개답(開沓)이라도 한다면 몽리구(蒙利區) 삼백여작인(三百餘作人)은 당장(當場)에 사활문제(死活問題)에 직면(直面)할 것이다.

 

  사실(事實)에 잇어서 이못을 사용(使用)치 못하게 된다면 별()로히 수리공사(水利工事)나 축보공사(築洑工事)를 하여야할지니 대평(大坪)덜 삼백여작인(三百餘作人)이란 그 대부분(大部分)이 중소농층이하(中小農層以下)의 소작농(小作農)으로 최하층생활(最下層生活)을 지속(持續)함에도 극곤극난(極困極難)하거든 언감생심(焉敢生心)으로 계획(計劃)이나 세워볼수잇스랴 공검지불하(恭儉池拂下)한다는 소식(消息)이 들리자 관계작인등(關係作人等)은 청천벽력(靑天霹靂)이나 나린 것처럼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혹()은 무슨대책(對策)이나 업슬가하야 재삼작인대회(再三作人大會)를 개최(開催)하고 만단(萬端)으로 강구(講究)하야보앗스나 막연(漠然)히 모인 대중(大衆)은 하등(何等)실력(實力)조차업는 처지(處地)이엇스니 울분(鬱憤)한 마음만 앙앙(怏怏)할뿐으로 광명(光明)한 해결책(解決策을 어찌못하고 다만 굿개단결(團結)하야 끗까지 항쟁(抗爭)하자는 이론(理論)에 긋치고 말엇다고한다.

 

▲    2011년 국가 습지로 지정된  '겨울의  해질무렵 상주공검지(尙州恭儉池)'

 

  공검지불하문제(恭儉池拂問題)가 들리기 전()에 벌써 오래 전()부터 물욕가(物慾家)들은 혹()은 양어(養魚) ()은 수관(水貫)의 폭리(暴利)()을 탐()하야 암암리(暗暗裡)에 개인(個人)의 소유(所有)를 만들고저 운동(運動)한 자()가 불소(不少)하얏스나 작인(作人)()의 반대(反對)로 성공(成功)치못하얏다.

 

  동지(同池)를 매수(買收)할 자()는 동척이외(東拓以外)에 하자(何者)도 업다고한다 하고(何故)오하면 관계(關係)작인(作人)()의 처지(處地)로는 오천원(五千圓)이라는 거금(巨金)을 판출(辦出)할 방도(方道)가 업고 동척(東拓)은 평소(平素)희망(希望)하든터이오 대평(大坪)덜 대지주(大地主)인 관계(關係)로 그 대가(代價)는 고하간(高下間)매수(買收)할 것은 틀림업는 추측(推測)이다.

 

  근자(近者)전선각지(全鮮各地)에서 수리조합(水利組合)문제(問題)니 수세문제(水稅問題)니하야 대농민쟁의(對農民爭議)가 접종발발(接踵勃發)함을 목도(目睹)하는 당국(當局)으로서는 약소세민계급(弱小細民階級)의 고경(苦境)을 통찰(洞察)치못한 과단(果斷)이라할 수박게 업다. 소위(所謂)재정결핍(財政缺乏)의 보충책(補充策)으로 부득이(不得已) 불하운운(拂下云云)하나 당국(當局)으로서는 구우일모(九牛一毛)의 호말(毫末)에도 불과(不過)한 극소(極小)한 것으로 여사(如斯)한 것은 유무간(有無間)에 하등(何等)지장(支障)이 무()할 것이니 몽리(蒙利)당사자(當事者)로 보면 오백여년(五百餘年)의 긴 역사(歷史)를 가졋슴을 말하 이 봇물로 오랫동안 농사(農事)하야 왓슴으로 실()로 생명수(生命水)의 보고(寶庫)라 아니할 수 업다 그럼으로 관()으로서는 큰수입(收入)도 되지 못하고 민()으로서는 막대(莫大)한 해()를 입게 된다

 

  오백여년(五百餘年)의 장구(長久)한 역사(歷史)로 보든지 관계 삼백여농민(關係三百餘農民)의 고경(苦境)을 보든지 여하간 동지(如何間 同池)를 방매(放賣)함은 오인(吾人)은 절대(絶代)반대(反對)이다 연()이나 불용(不用)관용(官用地)처분안(處分案)에 의()하야 기어(期於)히 불하(拂下)코저 할진대 먼저 그 대가(代價)를 표준가격(標準價格)에서 반감(半減)하고 상환기간(償還期間)을 삼십년이상(三十이상(以上)으로 하야 누백년이래(累百年以來)의 연고자(緣故者)()에게 양여(讓與)하야 줌도 가()하다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당국자(當局者)는 민도(民度)의 궁상(窮狀)을 충분고려(充分考慮)하야 선처(善處)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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