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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민요 ‘연밥따는 노래’
상주문화원장 김철수 박사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20/06/25 [09:40]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상주문화원장 김철수 박사

   7월이면 연꽃의 계절이 시작되는데 상주는 ‘공검지에 핀 연꽃’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상주연꽃의 역사는 공검지(恭儉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공검지는 삼한시대에 축조한 4대 저수지 중의 하나로 추정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넓고 맑은 공검지에 연꽃이 만발하면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즐겨 찾았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우선 퇴계(退溪) 이항(李滉) 선생은 <동우번하(凍雨飜荷)>란 시에서 중국 항주(杭州)에 있는 ‘십리 연꽃 밭’과 ‘공검지의 연밭’을 비교하였고, 『함창군읍지(咸昌郡邑誌)』에도,

 

  “서쪽 못 가에 연꽃이 수 리(數里)나 연(連)이어 피어 의연히 중국의 전당호(錢塘湖)의 아취가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검호기(遊劒湖記)>에는

 

  “좌우를 살펴보니 푸른 연잎이 덮개처럼 뜨고 연대는 수풀처럼 죽 늘어섰는데 천연스러운 꽃 봉우리가 묏 봉우리처럼 돋은 위를 배가 지나니 맷돌 도는 소리가 나고, 연 잎사귀가 누웠다간 다시 일어서며 붉은 연꽃이 서로 비비고 푸른 잎이 서로 부딪쳐 향기는 바람되어 사방으로 번지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랑스럽게 부르고 있는,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 처녀야
               연밥줄밥 내따줄게/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라는 <연밥따는 노래(採蓮謠)>라는 민요도 이 공검지를 배경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국악계에서도 이 노래가 ‘상주의 민요’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밖에도 연꽃을 노래한 시인들은 많으며, 조선시대의 여류시인인 허난설헌(許蘭雪軒)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당시 여성들은 사회와 단절되어 소외된 공간에서 극히 수동적이고 제한된 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에 글을 배울 수 없었고, 글을 짓는 것은 엄두도 못 내었으며, 여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27세에 요절한 허난설헌이지만, 떳떳하게 초희(楚姬)라는 이름과 경번(景樊)이란 자와 난설헌(蘭雪軒))이란 호를 가지고 살았는데, 이분이  <채연곡(采蓮曲)>을 썼는데,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이 구슬처럼 빛나네(秋淨長湖碧玉流)
       연꽃 덮인 깊숙한 곳에 작은 배를 띄우고(荷花深處繫蘭舟)
       물 건너 님께서 보이시길래 연밥 따서 던지고는(逢郞隔水投蓮子)
       행여나 남이 보았을까 반나절이 부끄러웠네.(或被人知半日羞)

 

 

입니다.
  그런데 이 분의 아버지가 허엽(許曄)이란 분이고, 1579년(선조 12) 6월에 경상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인 1580년(선조 13) 1월에 상주객관(尙州客館)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딸 허난설원이 20살 때의 일입니다.
  따라서 혹이나 1579년에 아버지를 따라 임지(任地)인 상주에 들렸다가 공검지(恭儉池)의 연밭을 구경하고 <채연곡(采蓮曲)>을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망상(妄想)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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