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문화원장 김철수 박사 >
하필이면 이곳에서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20/07/15 [09:24]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숙정문(肅靖門)은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종로구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있는 대문으로 한양 4대문 중의 하나이다.


  1395년(태조 4)에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왕에게 청하여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


  이 문은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길이 매우 험하다. 또 성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동소문(東小門 : 혜화문) 밖으로 나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또한 한양에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양 출입에 훨씬 빠르고 편하기 때문에 대부분 동소문(東小門)을 이용했다.


  따라서 숙정문을 폐쇄해도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 두었다. 다만 한재(旱災)가 심할 때에 이 숙정문을 열고 숭례문(崇禮門: 南大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


  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이 문이 음방(陰方)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에 위치한 숙정문 일대에서 남녀간 밀애를 즐기면 액땜을 한다하여 그곳은 은밀한 남녀간의 정사(情事)를 나누던 곳이라 남녀간의 性 문제를 엄히 다스리려 했던 장소이다.

 

  특히 병조호란시에 조선처녀, 유부녀 등 50만 명이 중국에 끌려갔다. 이 조선처녀들이 중국에서 탈출했는데 사생아 출생이 사회문제가 되자 북한산 줄기에 흐르는 홍제천과 연신내 물로 여성 성기를 세척하면 다시 처녀로 인정한다는 인조의 王命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고향으로 귀국한 여성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리었는데 이 발음이 ‘화냥녀’로 불리게 되고 자식은 포로로 끌려간 화냥녀(還鄕女)의 자식이라고 하여 호로(胡虜) ⋅호로새끼라고 불렀다.


  한편 1531년(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년(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도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이 숙정문은 다락 없는 암문(暗門)인 것이 특색이다. 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흔히 숙정문 대신에 창의문(彰義門)을 북문(北門)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성문제에 관련해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자살했다. 그 넓은 북한산 자락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 곳을 생을 마감하는 장소로 택했는지 알 길이 없으나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5일간의 북쩍 거리던 장례절차도 마감이 되고 박원순 시장은 고향 창녕으로 내려가 버렸고, 숙정문도 아무 일이 없는 듯이 계속 문을 닫고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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