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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天桃)복숭아와 우정(友情)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상주시민뉴스 기사입력  2020/12/07 [09:31] ⓒ 상주시민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상주문화원장   김 철 수 박사

  시인(詩人) 구상(具常)은 1919년 9월 28일에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니혼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후, 1946년에 원산문학가동맹의 동인시집 ‘응향’을 통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러나 시집 ‘응향’사건으로 ‘북조선 문학예술 총동맹’으로부터 ‘반동 시인’으로 낙인찍히자 곧바로 월남하여 한국 전쟁 때는 종군시인으로 활동했다.

  초기 작품에는 북한 공산치하의 비인간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상승하려는 동경과 희구(希求)를 볼 수 있으나, 그 후 인간과 세계의 비극적 심부에 있는 어둠, 절망 등과 맞서는 가톨릭 시인으로 변신했다.
 
  소를 많이 그린 화가 이중섭(李仲燮)은 1916년 4월 10일에 평안남도 평원군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유화가 임용련, 백남순 부부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한글 자모로 된 기름과 소 그림을 즐겨 그렸다. 1935년 일본의 테이코쿠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 일본 자유미술가협회의 제7회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에서 태양상(太陽賞)을 받고, 이듬해에 <서 있는 소>, <망월>, <소의 머리>, <산의 풍경> 등을 출품해서 커다란 찬사를 받았다. 
  1945년 귀국하여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25전쟁 때 월남해서 종군화가로 활동하였다. 1952년 일본인 부인이 생활고 때문에 두 아들과 함께 도일(渡日)하자, 부두노동을 하는 등 곤궁한 생활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還都)로 서울에 올라와서 어렵게 미도파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유화와 은지그림을 비롯한 작품이 춘화(春畫)라 하여 철거당하자 자학과 실의에 빠졌다.
  말년(末年)에 정신이상과 영양실조 등으로 병원을 전전하던 이중섭 화백은 1955년 9월 6일.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9세였다. 안타깝게도 이중섭 화백이 숨진 후에 무연고 환자로 방치되었다가 뒤늦게 친구인 김병기에게 발견되어 평소 절친했던 구상(具常) 시인과 조카 들이 서둘러 9월 9일 예술인장(藝術人葬)으로 치렀다.
 
  시인 구상(具常)은 ‘초토의 시’로 유명하였고, 화가 이중섭은 ‘소’를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서로의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시인 구상과 화가 이중섭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어느 날 구상(具常)이 폐결핵으로 폐 절단 수술을 받았는데, 절친한 친구인 이중섭이 꼭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평소 이중섭보다 교류가 적었던 지인(知人)들도 병문안을 와주었는데 유독 이중섭만 나타나지 않았다. 구상(具常)은 기다리다 못해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는데, 나중에는 이 친구에게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뒤늦게 이중섭(李重燮)이 문병(問病)을 왔다. 그러나 구상은 심술이 나서 반가운 마음은 감추고 짐짓 부아가 난 듯 말했다.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 누구보다 자네가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네. 내가 얼마나 자넬 기다렸는지 아나?”

 

  이중섭은 “자네한테 정말 미안하게 됐네.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하고 이중섭이 내민 꾸러미를 풀어보니 ‘천도복숭아’그림이었다.

 

  “어른들 말씀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게.”

 

  구상은 한동안 말을 잊었다. 과일 하나 사 올 수 없었던 가난한 친구가 그림을 그려 오느라고 늦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진솔한 우정을 느낀 구상 시인은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천도복숭아’그림을 서재에 걸어 두고 평생을 함께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갈구하는 우정(友情)이 아닐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또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 일일까?
  가까이, 또는 멀리, 그리고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눈에 아롱거리며 미소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서 느끼는 기쁨이 아닐까?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으면 인생의 반은 성공한 셈이라는 말이 있다. 간혹 나도 인생의 절반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구상의 시심(詩心)을 담아둔 <구상 문학관> 마당에는 그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이 새겨진 시비(詩碑)가 있다.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
                       옛 강과 옛 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     게발선인장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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